서양화가 박철, 서민의 애환흔적 새로운 회화시도 (인사이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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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박철, 서민의 애환흔적 새로운 회화시도

 

 

Fortune14-1, 136×190㎝, Korean Traditional Paper, Natural dyes, 2014

 

 

“즉 짚이나 띠(茅)는 토지를 의미한다. 둘째는 청정(淸淨)한 식물이라는 것, 셋째는 인간의 생명을 부여(적어도 존속 시켜 줄)한 식물이라는 것, 넷째는 多産性의 열매를 맺는 식물이라는 것이다. 짚에 대한 신성성은 곡물신앙이 기반이 되어 있다. 그러한 짚으로 만들어진 줄의 신성성은 왼새끼로서 더욱 확실해 진다. 왼새끼는 ‘귀신을 쫓는다’ 등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韓國民俗學, 金東旭 외, 새문社 1988년 刊, 발췌구성>

 

맑고 화사한 봄볕이 흰색창호지를 투과해 게으른 잠을 깨운 유년시절이었다. 산수유 노란꽃망울이 창호지문에 드리워 가늘게 흔들리던 그 적념(寂念)의 시간이 불현 듯 그리워진다. 화면은 전통종이인 한지나 고서(古書)로 제작된 작품이다. 황백, 오배자, 빈랑, 도토리 등으로 천연염색한 후 일곱 여덟 번에서 삼십여 겹에 이르기까지 작업용 솔로 두드려가며 쌓아올린다. 

 

그때 천연접착제 황촉규(黃蜀葵)와 혼합하는데 압착된 것을 열흘정도 말려 뜯어내면 돌덩이처럼 견고해진다. 그것을 디테일 작업한다. 박철 작가는 “말리는 기간은 천연칼라와 종이가 자기들끼리 스스로 움직여 효과를 드러내는 시간이다. 이 과정은 작업취지의 중요한 콘셉트다. 마를 때까지 자연, 우연, 고연(固然)함을 기다린다”라고 말했다. 

 

Ensemble17-43, 104×87㎝, 2017

 

 

한지, 멍석, 떡살, 자연염료 등은 농경사회의 기층민중속에 널리 퍼져있는 재료다. 이들은 현대사회에서, 전통적인 서민문화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성찰하게 하는데 특히 한국인의 정체성(Identity)이 작용하는 대표적 교점(交點)이기도 하다. 

 

작품 ‘Ensemble17-43’은 옛날 어머니들이 우물물이나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중심을 잡기도하고 무게를 완충시키기도 했던 짚이나 천으로 만든 똬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황백의 황토색을 많이 썼다. 한국여성의 고난이라는 심벌이 작품화되었는데 무의식적인, 무행위적인 그러한 느낌이 되어서 회화적자취로 나타나는 것이 특이하다. 

 

또 한지에 요철의 표면변화가 있는 릴리프(relief) 부조회화를 도입시켰다는 것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이와 함께 가족과 마을공동문화의 장(場)이 되는 멍석은 농작물을 말리거나 윷놀이 등의 놀이, 애경사(哀慶事)에 사용돼 왔다. 

 

(왼쪽)Ensemble17-4, 127×127㎝, 2017 (오른쪽)16-8, 196×176㎝, 2016

 

 

세부형태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엮어진 인고의 산물로 오늘날 한국현대회화의 특징인 반복, 단순, 간결, 단색 등을 드러내 보인다. 추수를 끝내고 사랑방에 어울려 짚으로 짜 맨, 멍석의 그런 형태가 한국적현대미술의 근사치에 이른 것이다. 

 

‘Fortune’작품화면 디테일을 보면 국한문혼용 고서(古書)가 바탕이다. 멍석 한쪽엔 행운, 장수, 재물, 건강 등을 뜻하는 떡살이 둥그렇게 자리하는데 조상들의 미감과 지혜가 응축된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민족의 빼어난 기하학적디자인이다. 

 

한편 한지작가 박철(ARTIST PARK CHUL)화백은 “멍석의 형태만을 캔버스에 옮겨보니 기능적 의미는 사라지고 텍스처(Texture)와 색만 보여 지는 추상성으로 변모되었다”라고 했다. 이 말은 그가 갖고 있는 미적지향이 현대적이고 첨단적인 표현으로 바로 독창성의 드러냄과 다름이 없다. 옛날에도 현재도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출처 : 인사이트코리아(http://www.insightkorea.co.kr/)

권동철 전문위원, 미술칼럼니스트, 데일리한국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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