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를 통한 현대적 조형의지의 구현 - 정준모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1994년)

박철 0 2,466

한지를 통한 현대적 조형의지의 구현

박철의 회화적 부조(Malerisches Relief)

 

한지의 특성과 동양의 미감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의 종이에 대한 생각은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도구라는 생각보다는 그림을 그릴 때는 종이와 물감이 만난다고 생각했고 글을 쓸 때는 종이와 먹이 교감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생각은 동양전래의 정령신앙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으나 어찌 되었든 이러한 믿음은 고대화론(畫論)이나 서법(書法)의 커다란 줄거리를 이루고 있음은 물론 이는 대대로 전수되어 내려와 오늘날에도 이러한 믿음의 전제에서 벗어난 그림이나 글씨는 아직도 득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한낱 여기에 불과한 미흡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종이위에서 붓이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선필(仙筆)의 경지 그것은 삶을 달관한 사람들만이 이루어 낼수 있는 무한한 경지의 것이라는 믿음이 지배하고 있는 동양의 미술에 있어서 종이는 하나의 지지체로서, 조형언어를 수용하는 지지체로서의 평면개념이 아니다. 여기서 종이는 미니멀아트의 원형으로 무언가를 암시하면서도 그것마저 배제한 모노크롬 오브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카시미르 말레비치(Kasimir Malevich)의 순수비대상(pure non-objecti-vity)적 해석이 서구적 사고에 의한 표현적인 것을 의미한다면 우리의 한지는 감수성만 살아있고 표현은 자제한 체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그러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종이에 대한 관념은 철학적 깊이와 관조적 의미기호로 존재한다는 것이 더욱 합당하다 할 것이다.

특히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미술이 대상을 찬미하고 그것과 일체되기를 원하나 무위이화(無爲而化)하려는 선가(禪家)의 사상이나 희노애락의 미발(未發)상태 즉 자연으로 회귀를 원하면서도 자연은 완결된 하나의 형태가 아니라 운동의 경향태(傾向態)로 파악하려는 자연관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이러한 자연관은 서구적 조형어법과 재료의 확산 그리고 현대미술이라는 거센 물결속에 다원주의, 다문화주의로 치닿는 상황에서도 크게 변함이 없이 우리 심성 한자락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고 그로인해 우리의 것이 우리의 것임을 잃지 않도록 시건장치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미술에 대한 이러한 생각의 저변에는 우리미술의 지지체인 종이 즉 한지의 특성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즉 한지는 종이 한 장 한 장 모두가 종이를 떠내는 사람의 개성과 노하우에 따라 그 모양과 재질이 다르긴 하지만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수공예품에 가깝다. 또한 한지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먹을 먹는 품이 고려지만큼 겸손한 종이가 없다고 칭찬할 만큼 넉넉한 수용성과 또한 한지의 반 투명성은 적당히 태양광을 차단하면서 안으로 끌어들여 묘한 여운과 함께 부드럽고 따사로운 기운을 연출하게 되는데 대개가 따가운 대낮의 햇살을 여과시키고 순화된 빛의 경향성으로 전환시킨다. 또한 한지의 가소성은 대단한 것이어서 무엇이든 수용하지 못할 것이 없고 또 수용한 연후에는 그만의 특성을 수용단하는 주체에게 전이함으로서 자신의 모습은 스스로 감추고 드러내지 않지만 그만의 성질은 잃지 않는 은근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한 한지의 물리적 특성 가운데는 우선 질겨 잘 찢어지지 않아 사초를 기록했던 종이를 자하문 밖에서 빨아서 다시 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질길 뿐만 아니라 냄새가 향기로울 뿐만 아니라 지질이 매우 부드럽고 흡수성이 좋아 물감을 들이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에 매우 적합할 뿐만 아니라 기름 또한 잘먹기 때문에 기름종이로 만들기 쉽고 그 자체로는 통풍도 잘 된다. 또한 가벼울 뿐만 아니라 말아도 표현에 손상이 가지 않는 고로 운반이나 보관이 용이하며 서민들이나 변방을 지키는 군사들의 방한복에 솜 대신 사용할 정도로 겹겹이 쌓으면 방한성이 뛰어나고 가벼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지, 새로운 조형언어로의 전이

이처럼 한지 하나에도 우리민족의 근성과 삶이 그대로 용해되어 있는 문화유산인 것이다. 이러한 심정적 문화재라 할 한지를 통해서 자신의 화업의 전과정을 일구어 온 이가 박철이다. 그의 작업은 외형적으로 매우 상징적인 요소 즉 크게 한지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 전통적인 농경문화의 산물인, 짚문화의 산물인 멍석과 서양음악의 상징적인 악기인 바이얼린이 한 화면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색채는 가능한 한 배제된 채 여백이 더욱 많아진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그의 또 다른 회화가 등장하고 있는 저변에는 간단없는 자기연마와 괴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1978년 이미 프로타쥬와 한지, 광목을 이용한 작품을 첫 번째 개인전을 통해 발표하고 있다. 당시의 찢음이라는 명제의 연작은 화선지에 다양한 먹물을 바르고 먹물이 그윽히 고인 화선지위에 손톱으로 긁어낸 연후에 광목을 올려놓고 두드려 전사시킨 이미지가 그대로 화폭에 고정되어 작품으로 화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네가와 포지, 강함과 약함 그리고 새로운 것의 탄생과 사라짐등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정착시키려는 의도로 보이며 이는 그의 최근작에서까지 회화적 특질을 이룬다. 한 알의 씨앗이 떨어지는 순간 새로운 생명은 태어난다.”는 진리가 구체화된 그의 회화 언어인 멍석이나 바이얼린이 구체적인 형상을 가지고 있으나 전체를 암시하는 부분에 멈출 뿐 소재 전체를 형상화하는 법이 없는 요즘의 회화의 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찢음이라는 다소 처절한 명제로부터 그는 두 번째 개인전(1982, 관훈갤러리)을 통해 낙엽이나 창틀등 구체적인 형상 안에 찢은 흔적들을 가두어 둠으로서 지금의 발 철의 작업을 암시하고 있다. 즉 당시의 무채색, 무형상의 회화기조로부터 일탈하여 구체적이지만 상징적이기도 한 형상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듬 해 그와 프로타쥬가 결합한 작품을 통해재료상의 변화를 통해 전통적인 염료 등에 관한 연구를 통해보다 한국적인 향취를 담을 것이라는 의지의 일단을 내비치기도 한다.

1983년 상파울로 비안날레에 참가하는 영예를 갖게 되는 그는 그간의 찢음이라는 명제에 시간성이 강조된 작품을 출품함으로서 그는 종래의 작업에 대한 접근과 회피의 갈등속에 우리의 세계와 우리의 실제적 실천의 내부로부터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그림을 찾는 휴지기에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그 휴지기는 정중동의 시기이며 새로운 대안적 회화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수반되는 시기인 것이다.

그는- 항용 그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되는 글이긴 하나 그의 작업의 일단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고 있기에 재차 인용하고자 한다. - “이 당시 나는 고향주변의 항고에 강의를 나가던 중 임하댐 공사로 수몰되기 직전의 안동지방을 드나들게 되었고 골동적 취향을 가진 나에게는 가구, 생활용구들, 농기구들이 매우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 고가의 문짝들, 부서진 와당, 농기구, 말안장, 멍석, 여물통 문고리 장식들과 이미 사람들이 미련 없이 떠나가 버린 텅 비어있는 폐허의 고가에서 영겁의 서글픈 얼굴을 부끄럽게 드러낸 채 나 뒹굴고 있는 나신의 창문에서 오는 고독감과 오랜 시간의 연속성이 이제 단절되고 말 것이라는 순간의 필연적인 허무와 무상함을 형상화 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기에 이르렀다.” 고 말하곤 한다.

이렇게 우리의 전통 특히 이름모를 민초들의 삶과 한을 담은 미속적인 도구들에게서 많은 회화적 영감을 얻게 되는 이유는 그도 역시 후기산업사회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의 주역들이지만 어쩔 수 없이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심정적 농사꾼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이는 민족 고유의 명절날이 되면 그 어려운 귀향길을 마다않고 떠나는 많은 인파들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할 것이다. -

이렇게 한낱 볼품없는 회화적 소재들에서 삶의 생성과 소멸의 흔적을 현존화 하려는 의지는 종래의 회화적 방법론을 떠나 새로운 어법을 구사함으로서 가능해진다. 즉 초기의 작품에서 사용했던 프로타쥬의 기법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해 그의 조제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낯설은 한지를 사용하면서 부터이다. 그는 한지를 사용하면서 부터이다. 그는 한지를 통해, 프랫팅(Plating)기법에 의한 성형을 통해 부조회화라는 그만의 회화형식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몰론 고도의 숙련도와 육체적 노력이 수반되는 은근과 끈기를 요하는 작업이며 중첩되는 한지에서 시간의 지속을 암시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얻어진 그의 회화는 한지로 쓰인 고서의 은은한 품에 안긴 창호의 형태로 최초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물론 이당시의 창호는 원래의 형상에서 많이 이지러지고 파편화한 채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세월의 흐름이 한지라는 고유의 완만한 색감으로 푸근하게 감싸 안으며 아련한 향수의 저편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었다. 또한 와당의 파편들이 화면에 펼쳐지면서 세월의 무상함과 소멸되어 가는 것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안착시키려는 그의 노력의 성과를 읽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부조회화의 기법적 한계로 인해 지루하게 반복되는 형상들은 못내 그를 괴롭히는 것이었으나 그는 중첩된 이미지의 안착에 성공하면서 나열형의 화면에서 자유로운 이미지를 구사할 수 있는 여유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문짝, 와당, 멍석등의 소재에서 더 나아가 바이얼린이라는 소재를 더하면서 오늘의 발 철은 단순한 복고취향의 화가가 아님을 명백하게 하고 있다. 옛 선인들의 손때가 묻고 배인 사물들의 편린들을 통해 오히려 그 속에 담긴 선조들의 슬기와 얼, 꾸밈없는 질박한 삶을 되살리면서도 시간이라는 어찌할 수 없는 무한한 힘 앞에 노출된 인간의 모습을 대신하고 있는 소재들을 통해 소멸과 단절 이면에 놓인 전통과 삶의 지혜 같은 것을 보여주려 하면서도 악기라는 고유의 기능 외에도 마치 여인의 나신을 연상하리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지니고 있는 바이얼린의 형상을 통해 한국적 토속성과 상징으로서의 민속기구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서구문명의 수용을 현실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전통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조형원리에 충실한 화면구성으로부터 벗어난 그의 바이얼린과 명석들이 화면의 하단부에 어떤 규칙이나 원리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자리한 근작들은 그의 원숙해진 기법적 숙련도를 보여주며 회화와 일치된 삶의 기록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그렇게 얻어진 여유는 화면에 충분한 여유를 제공하며 배제된 색채로 인해 맑고 투명한 삶의 철리를 대신하는 여백의 미를 낳고 있다.

이렇듯 상생하는 조화로움이 짙게 배인 그의 화면을 통해 가을날 창호를 바르고 국화잎으로 문양을 만들어 겨울을 대비하던 옛 정취와 바이얼린의 선율, 잘 우려낸 차 한잔의 여유로움이 묻어나올 것 같은 멋스러움을, 오늘에 다시 보고 느낄 수 있는 한가로움을 박 철은 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1994.8

 

 

정준모(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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