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지 않은 그림 Painting without Painting - 박천남 (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부장) (2018)

박철 0 2,296

그리지 않은 그림 Painting without Painting

 

박 천 남

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부장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은 '2018동시대미감전'으로 <박철: 그리지 않은 그림 painting without painting>을 개최한다. '동시대이슈전'과 함께 격년제로 기획, 교차 전시하고 있는 이번 전시는 작가 박철이 오랜 시간 천착해 온 특유의 종이부조작업를 통해 한국 전통미감의 고졸(古拙)한 맛과 세련된 멋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박철은 일찍이 빼어난 손맛으로 유명했다. 특히 그의 생명력 넘치는 인물초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무릎을 쳤다. 인물의 생김새와 표정은 물론, 속심을 훔치는 기가 막힌 눈썰미와 손맛은 그를 당대 장안 최고의 인물화가로 손꼽기에 충분했다.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는 기막힌 드로잉과 인간적인 소묘술(素描術)을 자랑하던 박철은 어느 순간 그림을 그리지 않기 시작했다. 이른바 붓을 꺾거나 버린 것이 아니라, 작업의 주요대상과 그 대상을 담아내는 방식에 있어 일대전환을 예고한 것이다.

 

이는 박철이 회화의 오래된 전통을 거부했다기보다는 창작의 모티프, 즉 동인(動因)으로서 '전통'이라고 하는 또 다른, 다소 광범위한 습속(習俗), 혹은 이를 추체험(追體驗)할 수 있는 추상적인 관심과 방식으로 '이행'하려한 것으로 이해된다. 기존에 관심을 두었던 인물이라든가 삶의 풍경 등과 같은 구체적인 대상을 전통의 회화방식으로 삼투(滲透)하거나 상사(相似)하는 매력적인 고유작법으로부터 벗어나 '전통'의 시간성과 공간성 나아가 그것이 지닌 정신적, 문화적 가치를 동시대적으로 환기시켜보려는 나름의 지성적(知性的) 판단과 몸짓이었다.

 

이러한 관심의 전환은 무엇보다 '전통', 특히 쉽게 버려지고 잊히는 생활 속 '전통 오브제'들에 대한 아쉬움과 관심으로부터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기억의 저편으로부터 끝임 없이 밀려오고 묻어나는 삶의 흔적, 자연과 전통의 순수함과 질박함 등에 대한 경험과 인식, 이해 그리고 그로부터 길어 올린 자연스런 기운과 시적 영감을 거부할 수 없었음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함께 집안과 마을의 대소사, 혹은 애경사가 있을 때면 으레 늘 그 현장에 함께 했던 멍석이라든가, 삶의 향기 가득한 떡판 등으로부터 일상과 함께했던 창호(窓戶), 음악, 또는 악기 등이 작업의 주요 직간접적 모티프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박철은 유년시절을 보낸 시골에서의 삶이 알알이 새겨져 있는 생활 속 물건들을 만지고 두드리며 추억을 리드미컬하게 환기시킨다. 부드러운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딱딱한 브러시를 손에 들고 이런저런 오브제들을 물리적으로 두드리며 그들의 표정과 호흡을 되살려 낸다. 그를 두고 흔히 '멍석작가'라고 부를 정도로 박철은 다양한 멍석을 찾고 만지고 두드리며 한국적 전통의 제()기운을 현재적 시공으로 호출하고 떠낸다.

 

수 천 번의 두드림과 만지작거림을 통해 되살아난, 부유하듯 떠도는 기운들은 이런저런 전통종이, 특히 한지에 고스란히 스미었다. 한 두 장도 아니고 수 십 장에 달하는 종이 속에 켜켜이 그들의 존재를 드러냈다. 박철의 호출을 피할 수 없었음이다. 무모하리만큼 집요한 구애와 부름에 뜨겁게 화답한 것이다. 그의 작업방식은 극히 수공적인 것으로 '몸과 정신 그리고 땀의 초상' 그 자체다. 흔히 탁본에 의한 사물의 외형 떠내기 정도로 박철의 작업을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그의 작업은 의외로 지난하고 복잡하다.

 

조각에 있어 소조(塑造)작업 중, 특히 캐스팅작업 과정을 연상케 한다. 즉 사물을 직접적으로 떠낸 결과물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애정하는 이런저런 사물을 크고작은 시멘트주형으로 떠내고 주형 내부에 가감 없이 음각된 사물의 흔적 속에 한지를 우겨 넣고 누르고 두드리며 그들을 다시 끄집어낸 작가의 땀과 정신 그리고 몸과 사물정신이 함께 녹아 있는 총체적 결정체에 다름아니다. 이들두고 '물아합일(物我合一)'이라하던가. 어디 되살려낸 것이 전통과 오브제의 생명력 뿐이겠는가, 정작 함께 일깨우고 만나고 되살아난 것은 박철의 몸에 배어 있는 한국인의 부정할 수 없는 유전자와 작가로서의 호흡과 정신일 것이다.

 

주요 지지체인 한지의 색감, 특히 채도를 끌어 올리기 위해 아크릴물감을 제한적으로 사용하기도하지만, 그의 독특한 컬러링의 근간은 천연염료에 의한 전통염색술이었다. 그의 화면에, 작업에 녹아들고 스민 것이 비단 전통 뿐이겠는가? 박철의 작업은 자신만의 오롯한 경험이라기보다는 대부분의 중장년이 지난 생을 열심으로 살아내며 공유하고 있는 소중한 향수를 자극하고 공감하게 한다. 그것이 혹자에게는 일견 텅비어 있는 추상회화로, 외국인의 눈에는 이국적인 느낌으로 보이거나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박철의 한지부조작업은 자신의 몸과 정신으로 풀어낸 극적 퍼포먼스의 공감각적 결과에 다름아니다. 대부분의 그의 작업이 보는 이의 공감을 동시대적으로 이끌어내는 매력을 견지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박철은 용도 폐기된 옛 것, 오래된 구식의 무엇으로 치부된 것들, 이른바 버려진 것들을 손으로 주워 닦아내고 어루만지며 새로운 호흡을 부여한다. 투박하고 텁텁하지만, 질박하고 순박한 질감을 있는 그대로,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꼼꼼히 삼투한다. 전통을 간직한 물건에 대한 박철의 세심한 사물시선은 손재주와 손맛으로 뭔가를 세련되게, 기교적으로 그려내기보다는 몸으로, 마음으로, 영혼으로 다가가 사물과 전통의 있는 그대로의 물성과 심성을, 잠복된 내재율을 원초적으로 깨우고 떠내는 따스함 그 자체라 하겠다.

 

박철이 강조하는 전통, 한국적인 것, , 노동, 집요함, 땀과 호흡 등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생활 속 삶의 풍경으로부터 자연스레 기인한 것들이다. 어르신들이 노동요를 불러가며 빚어내던 가마니와 멍석, 명절이면 만나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떡들과 그들을 찍어내던 떡판, 동네 어귀 작은 연못에서 곱게 피어나던 연꽃 등으로 기억되고 소급되는 유년시절과 전통에의 옛추억과 옛생각을 기꺼이 소환하고 삼투하고 있는 것이다. 빼어난 손맛을 보인 초기 드로잉, 회화작업이 어쩌면 남을 위한, 보는 이를 위한 손이었다면, 이후 한지부조작업은 짐짓 자신을 위한 손이었다. 이를테면 그 과정에서 진솔한 손맛, 손을 통한 진정한 정신을 느끼고자 한 것이다. 전자가 작업의 결과를 강조한 것이라면 후자의 경우는 자신의 몸과 호흡을 오롯이 받아주는, 그어떤 결과를 그리워하며 이어가는 작업의 진행과정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큐브미술관이 선택한 2018년도 동시대미감은 박철의 멍석이다. 전시장 가득 박철의 멍석을 걸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최첨단의 시대, 박철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멍석으로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힘껏 열친다. 비록 그것이 캔버스라고 하는 제한된 크기와 공간에 구현되어 있기는 하지만, 박철이 담아낸 전통과 전통에의 열정과 호흡은 오래토록 살아 움직이며 기억될 것이다. 멍석으로 펼치는 새로운 미감의 세상, 21세기에 다시 열린 전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보자. 산고(産苦)와도 같은 지난한 인내와 기다림, 작가의 따스한 성결이 오롯이 담겨 있는 여울목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Painting without Painting


Park Tcheon-nahm

Seongnam Cultural Foundation Chief Curator


Seongnam Arts Center’s Cube Art Museum is holding the 2018 Contemporary Aesthetic Sense Exhibition, Painting without Painting. Held alongside the Contemporary Issue Exhibition on alternate years, this year’s Contemporary Aesthetic Sense Exhibition will be a great opportunity to appreciate the time-honored savor and sophisticated sapidity of Korean traditional aesthetics through unique paper relief works, a field explored by artist Park Chul throughout his long career. 


Park Chul became known for his exquisite touch early in his career. His vibrant portraits, in particular, struck every viewer speechless. The extraordinary attention to detail and dexterity of hand, which deftly capture the subject’s appearance, facial expression and underlying emotions, are enough to render Park one of the greatest portrait painters of the time. Despite demonstrating awe-inspiring and lifelike drawing and sketching skills, however, Park Chul abruptly ceased to paint. He neither abandoned nor disavowed the brush, but instead heralded a prelude to a fundamental shift in the way he captured objects and motifs. 


This transformation is interpreted not as a rejection of the old tradition of painting, but instead as his attempt to turn to another creative motif; an expansive system of conventions within “tradition” as a source of inspiration, or an abstract interest and method that allow the experience thereof. It was Park’s own intellectual determination and attempt to break away from the attractive yet traditional method of instilling or imitating a specific object in which the artist holds an interest, such as a figure or a scene within daily life, through traditional painting techniques, in order to shed a contemporary light on the temporality and spatiality as well as the spiritual and cultural value of “tradition.” 


This shift in interests seems to have originated from his attachment and yearning for “tradition,” especially traditional objet in our daily life, which are easily abandoned and forgotten. He was unable to reject the traces of life that ceaselessly exude and emanate from memories deep within, the experience and perception of the purity and simplicity of nature and tradition, and the resultant energy of nature and poetic inspiration. The key direct and indirect motifs in Park’s work consists of objects such as straw mats (meongseok) that have always formed a part of his childhood memories or both positive and negative memories of family or town events, or a wooden rice-cake pattern filled with the scent of life, old wooden windows and doors that contained our daily life, and music or musical instruments.  


Park Chul brings back memories through the rhythm created by touching and tapping on daily objects that are engraved with traces of life in the rural town in which he spent his childhood. Instead of painting with a soft brush, Park uses a hard brush to physically tap on objects to restore life to their expressions and breaths. Nicknamed the “straw mat artist,” Park Chul finds, touches and taps on a variety of straw mats, molding and summoning the spirit of Korean tradition to the present time and space. 


Revived through thousands of touches and taps, the energies floating around the objects saturate through the various traditional papers, especially hanji. The existence of these energies is laid bare across dozens of pieces of paper, unable to escape Park’s summons. It was a passionate response to his reckless and stubborn call. His method is completely manual and embodies the very essence of “portrait of body, spirit, and sweat.” Park’s works may be regarded as simply making a rubbing of the outward form of an object, but, in fact, his working process is surprisingly difficult and complicated. 


His works are suggestive of molding in sculpture, especially the casting process. In other words, his creations are not the result of direct molding of an object but rather a crystallization of the whole object’s body and spirit, as well as the perspiration and spirit of the artist, who cast various objects with cement and squeezed hanji into the impressions of the objects engraved inside the mold, before pressing, tapping and emptying the mold, which symbolizes the unification of subject and object as one. Tradition and the vitality of the objects are not the only aspects revived by the artist. What he actually awakened, encountered and revived is the undeniable gene of the Korean people ingrained in his body, as well as his breath and spirit as an artist.  


While Park made limited use of acrylic paint in order to accentuate the colors and tones of hanji as his main medium, the foundation of his unique coloring stem from traditional dyeing techniques using natural dye. Tradition may not be the only element that infused and permeated into his canvas, his works. Park Chul’s artwork is not an expression of the artist’s own experience, but instead stimulation and inspiration of the precious nostalgia shared by most middle-aged people who have lived their lives to the full. Some may consider Park’s art empty abstract work at a glance and foreigners may find it exotic, yet Park’s hanji relief works are the multisensory products of a dramatic performance delivered using both his body and mind. This may be one of many reasons why most of his works induce empathy from the contemporary viewer.


Park Chul picks up, cleans off and caresses old discarded objects, those regarded as outdated and obsolete, or abandoned, to instill new life to them. He meticulously instills and captures their rough, unrefined, plain and simple textures, as if not to miss anything. His delicate eye for objects laden with tradition represent the very sense of warmth within the primal awakening and embodiment of the material properties, emotional disposition, and innate rhythm of the object and tradition through an approach with the body, mind and spirit, rather than using the artist’s skill and style to depict something in a refined and technical manner. 


Park’s focus, such as tradition, Korean characteristics, the body, labor, persistence, sweat and breaths are all naturally derived from scenes within his daily life since childhood. Straw bags and mats woven by old men as they sang work songs, beautiful rice cakes decorated using wooden rice-cake patterns during holidays, and picturesque lotus flowers blossoming on the small lake nearby the town, which are remembered and traced back as childhood memories, recollection of the past, or old traditions, are summoned and instilled into a piece of art by Park. If the exquisite touch of the drawings and paintings from his early years had been dedicated to others, or the viewer, his hanji relief works were produced for the artist himself. In other words, the artist attempted to feel his true touch, to feel his true spirit through his hands. If the former had emphasized the outcome, the latter placed more weight on the process that wholly accommodated the artist’s body and spirit, out of the artist’s longing for a certain outcome. 


The contemporary aesthetic sense curated by the Cube Art Museum in 2018 is Park Chul’s straw mat, which is displayed all around the exhibition hall. In an era where cutting-edge technology seemingly knows no bounds, Park Chul unflinchingly throws open the doorway to the past, present, and future with his straw mat. Despite being limited by the size and space of the canvas, the tradition encapsulated by Park Chul and his breath and passion toward tradition will be alive and remembered for a long time. This is a gateway into the new world of aesthetics that unfolds from a straw mat, a tradition renewed in the 21st century. We would like to invite you to witness the coursing river that embodies the unrelenting patience and compassionate character of artist Park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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