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과 소멸, 그 존재의 변증법 - 윤진섭 (미술평론가) (1994년)

박철 0 2,854

생성과 소멸, 그 존재의 변증법

-박철의 한지 작업에 대하여-

 

근자에 한지작업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나날이 증대되고 있다. 이같은 열기는 때마침 불기 시작한 우리 것에 대한 뿌리찾기 운동과 결부되어 그 의의를 가일층 증폭시킨다. 최근에 일고 있는 뿌리찾기 운동이란 이를테면, 국악분야에서 일고 있는 판소리라든지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서편제 신드롬따위를 이름인데, 이와같은 일련의 현상들은 향후 우리 문화예술의 진로에 비춰볼 때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게 본다면 미술계에서 일찍부터 일기 시작한 한지작업에 대한 실험은 이미 뿌리를 깊숙이 내린 편에 속한다 할 수 일겠다. 작가들이 한지를 조형상의 주된 매재로 다루기 시작한 것이 대략 70년대 초반이니 어느덧 2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현대미술, 그것도 특히 추상회화를 전공하는 극소수의 작가들에 의해 한지의 매재적 실험가능성이 조심스럽게 타진되기 시작했고, 80년대에 접어들어 본격적이고 광범위하게 파급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70년대의 한지작업이 기성의 화선지나 장지를 사용하는데 그치는 소극적인 실험이었다고 한다면, 80년대 이후의 양상은 직접 닥의 원료를 사용하여 성형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실험으로까지 발전해 나갔다고 하는 점이 다른 것이라고나 할까.

박철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한지작업의 2세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가 화선지와 광목을 사용하여 프로타쥬 작업을 시작한 것이 78년도이니 어언 16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화선지에 다양한 명도의 뉘앙스를 지닌 먹물을 바르고 축축히 젖은 화선지를 손톱으로 긁음으로써 세모꼴의 흔적을 집합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당시 박철의 작업내용이었다. 그렇게해서 긁혀진 흔적위에 광목을 덮고 두드리게 되면 선명한 흔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화면위를 뒤덮고 있는 크고 작은 상채기의 자취들.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은 그것들은 평면적인 화면위에서 때로는 밀집되서 때로는 일정한 패턴으로 나타났다. 이 당시 그의 찢음연작에 나타나고 있는 조형적 방법론은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강과 약, 능동과 피동, 밝음과 어둠 등인데 이는 최근작에까지 이르는 그의 기조적 방법론이 되고 있다. 이 점은 잠시후에 다시 살펴 보겠다.

1978, 박철의 첫 개인전에 부쳐 미술평론가 김복영은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이 작가의 찍기법은 분명히 유리의 얼룩의 이미지화에 잘 들어 맞는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나타난 패턴의 단위들과 이들의 집합적 전체가 보이는 형태는 처음의 의도에서 기대했던 것 보다는 한층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단위패턴의 대소관계와 위치나 거리관계가 주는 인상과, 별렬방법에 의한 평면성은 모두 무엇의 이미지화를 위해 기여하고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1회 개인전 카타로그 서문중에서-

 

여기서 말하는 그 무엇이란 화면에 나타난 이미지의 원형으로서 그것은 곧 작가가 평소에 무심코 보면서 지나쳤던 사물들의 형태나 어떤 현상일 수 있다. 박철의 경우에 있어서 그것들은 유리창에 얼룩진 물방울이라든지, 나뭇잎, 창문에 해당한다. 끊임없이 생성 소멸해 가는 사물들의 모습을 경험적으로 체득해 나가는 가운데 작가는 그로부터 어떤 구체적인 착상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얻어진 모티브를 조형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쫓게 되는 것이다. 박철은 예의 프로타쥬 방법을 빌어 화면내에서의 조형적 질서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박철의 회화에 있어서 질서 있는 조형적 포름과 그 속에 내재화된 네거와 포지, 강과 약, 빛과 어둠 등은 그 어떤 것 보다도 중요한 핵심요소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떠받들고 있는 생성과 소멸의 관계항이다. 70년대 중반 이후의 작업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는 이 원리는 특히 근작에 들어오면서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근작인앙상블연작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북 점촌이 고향이기도 한 그는 1985년 무렵, 안동대학에 강의를 나간 적이 있었는데, 안동 근교의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수몰위기에 처한 시골의 마을들을 목격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주지하듯이 안동은 고색이 창연한 도시이다. 안동하면 하회마을이 자연스레 떠오르듯이, 평사낙안의 분위기와 천혜의 취락구조를 갖춘 그곳은 예부터 명문귀족들이 조상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면서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문화형식, 그리고 갖가지 진기한 문화재를 보존, 전승시켜 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서울과 안동을 오가는 틈틈이 수몰위기에 처한 마을을 탐사하기에 이른다. 맨 처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그저 우리의 귀중한 생활양식들이 소멸돼 가고 있다는 막연한 안타까움에 주민들이 버리고 간 시골의 한옥들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버려진 맷방석이나 와당의 파편, 부서진 문틀 따위를 수집하게 된다. 이때를 회상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의 옛 것에 대한 각별한 애착과 애정을 키워왔던 나는 수몰지역에 무참히 버려져 있을 수도 있을 골동품적인 가치를 보유하고 있음직한 가구집기, 농기구 따위의 수집을 목적으로 87년 초부터 임하댐 공사현장 수몰지역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고가의 각종 문짝들, 부서진 와당, 허물어진 기와 조각들과 여러 종류의 농기구, 말안장, 멍석, 소의 여물통, 문고리, 각종 항아리류 등을 수집하게 되었고, 이미 사람들이 떠나가 버린 텅 비어 있는 폐허의 고가에서 영겁의 서글픈 얼굴을 부끄럽게 드러내버린 창문에서 오는 고독감과 오랜 시간의 연속성이 이제 그 단절의 현실앞에서 감수하지 않으면 안될 필연적인 허무와 무상함 ...... 그런 것들이 아쉬움으로 와닿음으로 인해서 나는 그 오랜 세월의 우리네 땀과 체취가 배어있는 고물들의 형태와 느낌들을 작품화 할 수 있는 가능성 타진에의 시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작가노트, 한지와 창호와의 만남, 미술세계 1989.7월호 49-

 

인용이 길어졌지만 작가자신이 작업상의 소재나 모티브, 또는 그와 같은 것들과 만나게 된 경위를 위의 문장은 소상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수몰지구에서 얻은 그의 귀중한 체험은 1983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참여이후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던 그에게 방법상의 또 다른 출발을 가져다 주는 계기를 가져다 준다. 8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시작되는 닥지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음과 양, 생성과 소멸의 변증법은 닥지와의 만남으로부터 보다 극명하게 주제로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 주된 방법론은 닥종이 플랫팅(Plaiting) 기법에 의한 부조회화인 것이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맨먼저 구상된 작품의 크기에 걸맞는 석고나 시멘트의 평평한 판을 만들고 그 위에 문틀이라든지 와당의 파편, 혹은 멍석 따위를 찍어 음각의 형틀을 만든다. 이 과정은 기술적인 숙련을 요하는 매우 까다로운 과정이랄 수 있는데, 왜냐하면 완성된 작품의 뉘앙스가 본래 의도했던 것만큼 얼마마한 근사치에 접근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이 단계에서 거의 결정된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형틀에 고서에서 떼어낸 한지의 파편을 붙힌다거나 다양한 색한지를 차곡차곡 배접해 나가게 되는데, 이 과정은 우연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면서도 까다로운 계획성과 주도면밀한 조심성이 요구되는 과정이다. 박철의 한지 초기작업과 최근의 그것들을 비교해 볼 때 현격하게 기술적 숙련도의 차이를 느끼게 되는 것은 그가 오랜 세월동안 작업을 해 나오면서 쌓은 기술상의 노하우 때문일 것이다. 30여겹에 이르는 한지를 배접하면서 반복적으로 두들기고, 그러한 인고의 과정을 거쳐 성형된 사물의 이미지는 두텁게 막이 형성된 한지의 배접판이 형틀로부터 떼어져 나올 때 비로소 양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판화기법이 그렇듯이 제작과정을 일일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점이 박철 부조회화가 지닌 매력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은 파지가 많이 나오게 마련이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그린다는 회화의 개념보다는 손으로 다듬고 어루만진다는 의미에서 조각적 속성이 강조된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이 촉각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당연한 것이리라.

그의 작품의 발전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주된 변화는 화면의 네귀를 의식한 대칭적 화면구성을 점차 허물어 갔다는 점이다. 89년 무렵의 초기작에서는 경직돼 보이는 좌우, 또는 상하대칭적 구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면, 최근 몇 년 동안의 근작에서는 이를 개의치 않는 파격이 나타나면서 부조의 깊이감 또한 매우 다채롭게 나타나고 있다. 이 점은 그의 기술적 숙련과 무관치 않다. 작업에 점차 자신감이 붙고 매재의 성질에 익숙해질수록 여러 가지 다양한 변형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교적 단조로운 구성과 다소 지루할만치 반복적인 이미지의 되풀이가 가져오는 식상함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은 화면에 바이올린이 등장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그리고 멍석이나 맷방석의 표면질감이 주는 균질하며 반복적인 패턴의 조형적 질서와 아름다움에 대비되는 바이얼린의 날렵한 형태는 화면에 리듬감을 불어 넣음으로써 생기를 부여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옛 것과 현재의 것이 가져다주는 대비효과와 멍석이라는 전체와 바이얼린이라는 부분이 앙상블을 이루는 시각적 대비는 생성과 소멸이라는 작업상의 주제를 매우 암시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전달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박철의 한지작업은 이제 본격적인 원숙의 경지에 접어든 것 같다. 색이나 형, 기술적 숙련의 문제에 있어서조차 그것은 더 이상의 단계를 필요치 않는 것 같다. 생성과 소멸, 좀 더 동양적인 개념에 적용시키자면 음과 양의 이론으로 범주화시킬 수 있는 그의 작업은 이제까지 형태구축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그것은 보다 큰 의미에서의 생성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필연적으로 소멸의 과정이 남는다. 해체로서의 소멸, 다음의 생성을 전제로 한 그런 소멸 말이다.

 

윤진섭 (미술평론가)

 

Becoming and Extinction, Its Dialectic of Being
-On Park Chul’s Korean Paper Works-

There is an increased interest in Korean paper works recently. The significance of this connected with the movement of searching for the root of Korean things is more than amplified. Some phenomena coming from search for the root-for example, expansion of p’ansori in Korean musical field and the syndrome of the movie Seopyunjae-should be judged as something very positive in the course of our culture and artworld.
Compared to the movements in other cultural fields, experiment in Korean paper works started quite early and it is already deeply rooted in our world. As Korean paper came to be treated as one of the principal media since the earlier part of the 1970s, so it already has the history of 20 years. At first it was carefully experimentated by a few abstract artists, and it is only after the 1980s that it came to be fully expanded. While works of Korean paper in the 1970s were limited to negative experiments with existing Korean drawing paper, the works of the 1980s were, advanced to some positive experiments using the raw material of paper to plasticate.
To say strictly, Park Chul belongs to the second generation of Korean paper works. It was in 1978 that he first started the frottage works with Korean drawing paper and cotton cloth. In those days, he was showing collectively the traces of triangles by scratching with his fingernails the Korean drawing paper on which Korean ink is soaked in various nuances of brightness. Some distinct traces appear when he covers the scratched traces with cotton cloth and taps.
Those traces of scratches large and small on the picture plane sometimes form dose formations and sometimes form certain patterns. His plastic methodology during those days in his series of <Tearing> is duality of the positive and the negative, strength and weakness, activity and passivity, brightness and darkness ; this has formed the rudiments of his works from his early days to the present This should he looked over later.
In his first one-man show in 1978, art critic Kim Bok Young referred to his works as follows.

“The unique method of the artist invariably fits well with imaging the stains on glass. However, the final unit of pattern and the form shown from the collective whole bear more narratives than we first expected. It should be said that size relationship of unit patterns, impression from position or distance relationship, flatness by parallel method all contribute to the imaging of ‘something’.”

from the critique of first one-men show That ‘something' referred to above is the prototype of image shown in picture plane and it may be the from of things or certain phenomena overlooked indifferently in daily life. For the  artist himself, it corresponds to things such as water drops on glass window, foliage or window. He empirically gains motives from the appearances of things, and he tries to plasticate these  motives into art. He has come to construct the aim Order in his picture plane by the method of frottage.
Orderly plastic form and the duality immanent in it such as the positive and the negative, strength and weakness, brightness and darkness is the most important element in Park Chul's paintings. And the relationship of becoming and extinction underlies them. This principle consistently maintained in his works from the mid 1970s to the present is more distinctly highlighted in his recent works.
  
 His recent works of <Ensemble> series originates from the reminiscence of his pm about ten years ago. He taught as a lecturer at Andong National University in 1985, and there he had the chance to observe country villages near Andong about to be submerged into water with the construction of Imha dam. As it is widely known, the area of Andong is a place where many noblemen formed their own site village, preserving their traditional life and cultural style, and various cultural properties as well. He visited this places in crisis of submerging into water on his way from Seoul to Andong, Without any concrete plan, he visited the deserted traditional Korean houses with some frustration, and from there he collected straw cushions, fragments of broken roof tiles, broken door frames and so on. He says as follows in retrospect.

“I have always had particular affection for and devotion to our remnants from early childhood. As a result, in order to collect things such as furniture and agricultural instruments. I came to visit the places under construction of lmha dam which was to be submerged under water. I succeeded in collecting various things such as door-frames, broken roof tiles, many kinds of agricultural instruments, horse saddle, straw mats, cattle mangers, iron rings on doors, many kinds of pots and jars, and so forth. I felt solitariness, the inevitable nihility and futility from me deserted old houses. In order to overcome this frustration. I tried to plasticate into my artworks the feeling coming from the forms of these remnants permeated with scent and sweat from our long past.

Notes of the artist, Monthly Magazine of Art World. July 1989, p. 49.

The statements of the artist above tells us the detail of his material or motives, and how he chanced to come by them This valuable experience of his obtained from the submerging areas gave a starting point for another methodology to him, who were then searching for a new breakthrough after the parfidpation in Sao Paulo Biennial in 1983. He came to encounter with mulberry paper in late 1980s.

The dialectic of becoming and extinction, the cosmic dual forces emerged as a prominent theme with his encounter with mulberry paper. And the principal method in his works is the relief painting with the plaiting technique of mulberry paper.

The process of making his works is as follows. First, he makes a flat plate of cement or plaster according to the planned size of the work. He then makes the engraved frame on the plate with imprinting door frame, fragments of roof tile, or straw mat. This process needing much technical skill is very difficult, because whether the nuance of the completed work approaches original intention depends wholly on this process.

Fragments of Korean paper taken from old books or various kinds of colored Korean paper are attached onto the plate frame. Some chance effects can be anticipated from this process, but it also needs careful plan and elaborateness. If we can boserve distinct difference of technical skill from his early works and his recent ones, it is because he has come to accumulate technical know-how from his long years of work. The image of a firing appears as an embossing only after the thick screen of attachment plate with Korean paper is removed from the plate frame, and this process of making attachment plate is a hard course of tolerance attaching some 30 sheets of Korean paper and tapping them repeatedly.
The charm in relief works of Park Chul might come from the fact that the whole process of production cannot be identified with our eyes like most printing skills. It is quite natural that his works make out many wasted paper. Furthermore, his works retain the draracteristits of sculpture rather than the concept of painting in that they are dealt with and embraced with hands instead of being drawn by hands after seeing, it is therefore natural that his works are felt as tactile.

The gradual destruction of symmetrical construction conscious of me four comers of the picture plane is the principal variation in his development of works, While there were rig'd composition of right and left or up and down in his works around the year 1989, exceptional irregularity appears in his recent works, and depth of relief is variably shown with this. This is not unconcerned with his technical accumulation. Variant metamorphoses are possible with
his self-confidence and familiarization with Hie property of the medium.
The appearance of violin in his works made it possible the overcoming of monotony coming from repetitive images. The keen form of the violin compared to the orderly and homogeneous pattern shown from the textures of straw mat or straw cushion resulted in giving vitality and rhythm to the picture. The effect of contrast in things of past and present, and the visual contrast forming the ensemble of the whole(straw mat) and the part(violin) could justly communicate to us both in an allusive and effective way the theme of becoming and extinction.

It seems that Park Chul’s Korean paper works have come to a level of perfection. It seems to me that there can be no further progress in his treatment of color, form and techniques. His works which can be categorized by becoming and extinction, or to put it in a more Oriental concept, the cosmic dual forces, has reached a destination of constructing form. And it was on the premise of becoming in a broader sense. Then a process of extinction is inevitably left in him. I mean to say an extinction based on deconstruction and another becoming.

Yoon Jin Seop (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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